법(法)대로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도의적·타협적 방식도 안 통할 때의 마지막 선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준말인 ‘법치’와 ‘법에 의한 지배(roleby law)’의 차이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흔히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저울, 한 손에 검을 든 정의의 여신으로 법치의 공정성과 강제성이 상징되는데, 법치의 연원으로는 고대 로마 자연법 사상을 친다. 이에 따르면 법이란 자연의 섭리처럼 순리적으로 ‘발견’될 뿐 ‘발명’되는게 아니다.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법이 개인 및 개인의 연합체와 공권력의 대결 속에서‘개인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발전한다.

법의 보편타당성은 창조주적 섭리에 비유됐고 ‘양도 불가한 천부인권’ 사상이 출현하는 등 그 개념이 구체화되며 법치가 구축돼 갔다. 그 과정은 피바다였다.

실정법은 의회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민주’의 결과로 취급되지만 그것은 때로 단지 목소리 큰 극렬 소수의 뜻일 수있다. 더욱이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면 부당한 의석수로 밀어붙인 ‘떼법’ ‘악법’이기 십상이다. 또한 멀쩡한 법도 사법부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상황일 경우 잘못 적용되기 쉽다.

‘법치’와 ‘실정법 강요’가 자주 혼동되는 사회에선 법관의 법해석 오류에도 아직 충분한 대책이 없다. 이 배경엔 덕을 쌓은 엘리트의 ‘예치’(禮治)와 그에 기반한 ‘인치’(人治)를 높게 평가해 온 수천년의 문화적 관성, 사회윤리를 가족윤리의 확장으로 여기며 ‘예’를 보완할 보

조적인 기능으로 ‘법’을 파악해 온 전통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법치를말하지만 일당독재 정당화에 주로 쓴다.

중국식 ‘법에 의한 지배’는 ‘의법(依法)치국’이라는 용어로 정립돼 있다.

‘개인 보호의 방패·무기’냐 ‘권력 유지를 위한 무기’냐, 이것이 법치와 가짜 법치의 결정적 차이다. 실‘ 정법 강요’를 ‘법치’로 착각하는 배경엔 하늘땅만큼 크게 벌어진 인간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원죄를 짊어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기독교적 전제와 우주적 완전성을 구현한 존재를 상정해 온 중화문명권 사이의 거리다. 기독교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투철한 인식 위에 서 있기에 초고도 과학문명 시대에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판단에 일말의 여지를 둘 줄 안다.

반면 인간과 삶이 이성과 제도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게 비기독교적 내지 반기독교적 입장들의 특징이다.

지상천국을 기약하는 공산·사회주의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자유공화 체제는 이들을 어느 정도 품을 수 있지만 이들 전체주의는 반대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교화를 시도하다가 죽이거나 그냥 죽인다. 1970년대 ‘킬링필드’가 그렇게 이뤄졌다. 21세기 킬링필드는 밥줄을 끊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열 등 사회적 고립을 통해 진행될 것이다.

 

자료출처 :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