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 181년 ~ 234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丞相)**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략가이자 정치가, 외교가, 발명가, 군사 전략가 중 한 사람입니다. 흔히 **공명(孔明)**이라 부르며, 자(字)는 공명,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입니다.
그는 지혜와 충성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극적으로 묘사되면서 더욱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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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과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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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년, 지금의 산둥성 낭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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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 제갈근과 함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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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荊州)**로 이주해 은거하며 농사를 지으며 지냈고, 후에 "와룡(臥龍, 누워 있는 용)"이라 불릴 만큼 인재로 소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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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비와의 만남 – 삼고초려(三顧草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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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가 모셔갔다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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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당시 혼란한 정국을 보고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제시함
→ 조조는 북방, 손권은 동남방, 유비는 서방(익주)을 차지하여 세력 균형을 이루자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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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촉한의 건국과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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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 촉한을 세운 뒤, 제갈량은 **승상(재상)**으로 내정 전반을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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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 농업 장려, 백성 안정, 군제 정비 등 수많은 업적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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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럽고 근면하여, 생전에도 후대에도 "제왕이 아니면서 제왕보다 나은 인물"로 평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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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벌(北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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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사후 어린 황제 **유선(劉禪)**을 보필하며 실질적으로 나라를 이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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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를 공격하여 한나라 부흥을 도모하는 5차례의 북벌을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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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과 명분 모두 정당했으나, 국력의 한계로 결정적 성과는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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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년, 오장원(五丈原)에서 병사하며 북벌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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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명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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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갈량의 인물됨과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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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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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심 |
유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였고, 유선에게도 충실히 보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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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결백 |
검소하게 살고, 사후에도 재물이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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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반성 |
"출사표(出師表)"에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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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
“제갈공명”은 지혜와 충성의 대명사로 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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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표적인 글 – 《출사표(出師表)》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으로, 유비의 유언을 따르며 한나라 부흥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담은 글입니다. 대표 구절:
“신은 항상 밤낮으로 근심하며, 위나라를 멸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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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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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평가 |
소설 속 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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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이고 성실한 정치가 |
신출귀몰한 천재 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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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이고 노력형 천재 |
마치 신선 같은 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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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함 |
전술, 점술, 기계까지 못 하는 게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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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제갈량은 단순한 책사나 전략가를 넘어, 한 나라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리더였습니다.
그는 유비와 유선 모두에게 충성을 다했고, 늘 자신을 돌아보며 백성과 국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후세에는 ‘지혜의 화신’, ‘충신의 본보기’**로 추앙받으며,
제갈량을 소재로 한 소설, 드라마, 연극, 게임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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